SDV 이야기 제8편 — AI가 분석하는 시대, 통계학자는 무엇을 책임지는가
데이터 분석을 넘어 의사결정과 가치 창출로 나아가는 통계 이야기
AI와 함께 작업하다 보면 편리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느낀다.
코드를 작성하고 오류를 찾으며, 분석 결과를 설명하고 글의 구조를 제안하는 과정이 빨라진다. 예전에는 오래 걸리던 작업을 짧은 대화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질문이 생긴다.
내가 오랫동안 쌓아 온 전문성은 이제 어디에 있는가.
이 연재는 그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나는 분석을 넘어 가치로 나아가는 통계학의 역할을 생각해 왔다. 그러나 그것을 AI가 하지 못하는 영역을 찾아 지키는 방식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AI가 맡을 수 있는 작업의 범위는 계속 달라질 수 있다. 오늘 사람이 더 잘하는 일을 영원한 경계로 삼는다면, 우리의 역할도 그 경계와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찾고 싶은 기준은 독점할 수 있는 작업보다, 함께 만들어낸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에 있다.
매끄러운 결과와 검토된 결과는 다르다
AI가 작성한 보고서는 잘 정돈되어 보일 수 있다. 문장은 자연스럽고, 표에는 제목이 있으며, 결론도 분명하다.
그러나 형식의 완성도가 근거의 타당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자료의 단위를 잘못 해석했는지, 가중치를 고려했는지, 서로 다른 대상을 비교했는지, 관련성을 원인처럼 설명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실제 분석 결과와 보고서에 적힌 숫자가 일치하는지도 살펴야 한다.
이것은 AI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람이 작성한 보고서에도 같은 검토가 필요하다. 다만 결과를 빠르고 많이 만들 수 있을수록 검토해야 할 산출물도 늘어난다.
한 문단의 결론이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전체 과정을 신뢰하면 안 된다. 어떤 자료와 조건에서 그 결론이 나왔는지 되짚을 수 있어야 한다.
검증은 결과를 다시 읽는 것보다 넓다
나는 AI와 분석할 때 "틀린 부분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만으로 검증을 끝내고 싶지 않다.
같은 해석을 다시 읽는 작업은 도움이 되지만, 처음의 가정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른 관점의 검토가 필요하다.
표본 수와 합계를 별도로 확인한다. 주요 지표의 산식을 점검한다. 일부 사례를 직접 계산한다. 분석 조건을 바꾸어 핵심 결론이 유지되는지 살펴본다. 인용한 자료가 실제로 존재하고 주장과 맞는지 확인한다.
검토의 강도는 결과의 사용 목적에 맞추어야 한다. 개인적인 탐색과 공적 의사결정에 사용하는 보고서에 같은 수준의 검증을 적용할 수는 없다.
또한 모든 오류를 제거했다고 보장하기보다, 어떤 점검을 했고 어떤 불확실성이 남았는지 설명하는 편이 정직하다.
책임은 사람 한 명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말이 아니다
AI 결과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는 말은 익숙하다. 그러나 책임의 내용을 구체화하지 않으면 마지막에 사람이 이름을 올리는 절차에 그칠 수 있다.
누가 자료의 출처와 사용 권한을 확인하는가. 누가 분석 가정과 방법을 검토하는가. 누가 현장의 의미를 판단하는가. 누가 최종 결정을 승인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수정하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책임이 실제 작업으로 연결된다.
통계학자는 주로 측정과 설계, 추정과 검증의 타당성을 살핀다. 분야 전문가는 해석의 맥락과 실행 가능성을 검토한다. 조직과 결정권자는 사용 목적과 영향, 최종 선택에 책임을 진다.
작은 작업에서는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서로 다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자료를 다루는 권한도 중요하다. 개인이나 조직의 민감한 정보를 어떤 도구에 제공할 수 있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분석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사용 권한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은 아니다.
AI는 동의를 얻는 도구보다 반론을 찾는 도구로 쓰고 싶다
나는 AI와 생각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한 가지 위험을 경계한다. 내가 제안한 개념을 AI가 계속 긍정하면,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생각이 확립된 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이다.
SDV 역시 예외가 아니다.
어떤 내용이 기존 통계학과 데이터사이언스에 이미 있는가. 내가 추가로 요구하는 작업은 무엇인가. 기존 개념과 이름만 다른 것은 아닌가. 실제 사례에서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AI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할 때 협업의 가치가 커진다.
독창성은 새롭다는 칭찬을 반복해서 얻는 것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기존 논의와 겹치는 부분을 밝히고, 나의 제안이 더하는 내용을 구체화하면서 만들어가야 한다.
물론 AI의 반론도 최종 판정은 아니다. 반론이 근거를 갖추었는지 다시 검토해야 한다. 협업은 동의와 반대 중 하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주장과 근거를 함께 정교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전문성은 결과의 신뢰성을 높이는 능력으로 드러난다
AI를 사용하는 사람 모두가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자료를 제공하며, 무엇을 의심하고, 어디에서 결론을 멈추는지에 따라 작업이 달라진다.
축적된 전문성은 이러한 판단에 사용될 수 있다. 다만 전문성이라는 이름만으로 옳음을 보장해서도 안 된다. 그 판단 역시 설명되고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AI보다 빨리 분석하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 아니다. AI의 능력을 이용해 이전보다 넓게 살펴보면서도, 결과가 무엇에 근거하고 어디까지 사용될 수 있는지 분명히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AI와 협력하는 통계학자의 역할은 결과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결과가 믿을 만한 근거로 사용될 수 있도록 검토와 책임의 구조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진다.
"AI와 협력하는 통계학자의 역할은 결과를 만드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그 결과가 믿을 만한 근거로 사용될 수 있도록 검토와 책임의 구조를 만드는 데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