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의 착시, 대표값의 재발견) 평균으로 설명되지 않는 데이터들 — 최빈값이 필요한 순간
“평균 혈액형”이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
한국인의 평균 혈액형은 무엇일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질문에는 애초에 답이 없다.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2023년 전국 성인 1,5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혈액형 분포는 A형 34%, O형 28%, B형 26%, AB형 11%였다. 그런데 이 네 범주를 “더해서 4로 나누는” 식의 평균 계산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A형과 B형을 더하면 무엇이 나오는가? 이 질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자료에서 유일하게 말이 되는 “대표값”은 최빈값(mode) — 가장 많은 사람이 속한 범주, 즉 A형이다. 흥미롭게도 이건 세계적인 경향과도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는 O형이 가장 흔한 혈액형이지만, 한국은 A형이 최빈값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평균”은 이 자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지만, “최빈값”은 이렇게 분명한 사실 하나를 알려준다.
척도가 다르면 쓸 수 있는 대표값도 달라진다
혈액형, 성별, 거주지처럼 순서 없이 분류만 하는 자료를 명목척도라 부른다. 이런 자료에는 산술 연산 자체가 의미를 갖지 않으므로, 평균은 물론 중앙값조차 계산할 수 없다. 오직 “가장 많이 나온 값이 무엇인가”라는 최빈값만 모든 종류의 자료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대표값이다.
혈액형, 선호 브랜드, 거주 지역, 정당 지지처럼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범주형 자료를 다룰 때는 평균이나 중앙값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이 값들을 더하고 나누는 것이 말이 되는가?” 답이 “아니오”라면,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는 최빈값이다.
평균은 계산되지만, 아무도 그 시각에 있지 않다
그런데 최빈값이 필요한 순간이 하나 더 있다. 이번엔 숫자 자료인데도 평균이 무의미해지는 경우다. 서울의 지하철·버스는 출근 시간대와 퇴근 시간대, 하루 두 번 승객이 몰린다. 이런 “시간대별 승차 인원” 자료의 평균 시각을 계산하면 어떻게 될까?

평균 시각은 오후 1시 근처로 계산된다. 그런데 그 시간대는 실제로는 하루 중 승객이 가장 적은 한산한 시간이다. 출근·퇴근이라는 뚜렷이 다른 두 봉우리를 하나의 평균으로 뭉개버리면,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는 시각”이라는 표현 자체가 실재하지 않는 순간을 가리키게 된다. 이런 자료를 요약할 때 필요한 건 하나의 평균값이 아니라, “오전 8시와 오후 6시,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는 최빈값(또는 최빈 구간) 정보다.
문제는 이 함정이 숫자 자료에서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bar{x} = \frac{1}{n}\sum x_i\)라는 계산은 원자료를 하나하나 더해 \(n\)으로 나눌 뿐, 그 값들이 한 덩어리로 몰려 있는지 두 봉우리로 갈라져 있는지는 전혀 들여다보지 않는다. 즉 평균이라는 숫자 자체에는 분포의 모양이 조금도 남지 않는다. 그래서 숫자형 자료를 다룰 때는 평균을 계산하기 전에 반드시 히스토그램부터 그려보는 순서를 거쳐야 한다. 히스토그램 없이 곧장 평균을 구하면, 오늘 살펴본 지하철 사례처럼 봉우리가 여러 개라는 사실 자체를 발견할 기회조차 없이 지나가 버린다.
시간대별 교통량, 매장 방문객 수, 통화량처럼 하루·한 주 동안 뚜렷한 패턴이 반복되는 자료는 평균 하나로 요약하면 오히려 정보를 잃는다. 숫자형 자료를 요약하는 표준 순서는 평균부터 구하는 게 아니라, 히스토그램을 먼저 그려 봉우리가 몇 개인지 확인한 다음에 평균·중앙값·최빈값 중 무엇을 쓸지 정하는 것이다. 이 순서를 건너뛰고 평균부터 계산하면, 다봉분포라는 신호 자체를 놓친 채 실재하지 않는 “평균 시각” 같은 숫자만 손에 쥐게 된다.
더 깊이: 척도에 따라 다른 대표값
강의노트 〈기초통계학 1. 데이터란? — 질적변수와 양적변수〉는 명목척도부터 비율척도까지 척도 유형별로 어떤 요약 통계가 계산 가능한지 정리한 표를 제시한다. 이 표에서 최빈값은 명목·서열·등간·비율척도 모든 칸에 체크되어 있는 유일한 대표값이다. 반면 평균은 등간·비율척도에서만, 중앙값은 서열·등간·비율척도에서만 계산할 수 있다. 이어지는 〈데이터와 요약통계 — 측정형 데이터〉 절은 산술평균이 “이상값에 민감하다”는 약점을, 중앙값은 “이상값에 강건”하다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최빈값의 강점은 이와는 결이 다르다 — 이상값 방어가 아니라, 애초에 평균이라는 연산 자체가 성립하지 않거나 의미를 잃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는 선택지라는 점이다.
결론: 평균을 내기 전에, 봉우리부터 세어보라
나는 학생들에게 어떤 자료든 요약하기 전에 먼저 두 가지를 물어보라고 말한다. 첫째, 이 값들을 더하고 나누는 게 말이 되는가? 아니라면 최빈값이 답이다. 둘째, 숫자형 자료라서 말이 된다 해도 평균을 계산하는 코드부터 치지 말고, 히스토그램부터 그려서 봉우리가 하나인가 여럿인가를 눈으로 확인하라. 이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즉 히스토그램 없이 곧장 평균을 구해버리면, 다봉분포라는 신호는 애초에 발견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지난 챕터의 “같은 평균,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펴봤듯, 평균이라는 숫자 하나는 분포의 모양을 감쪽같이 숨긴다. 혈액형처럼 평균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자료든, 출퇴근 시간대처럼 평균이 존재하지도 않는 순간을 가리키는 자료든 — 결론은 같다. 평균은 만능 대표값이 아니라, 특정 조건(등간·비율척도, 단봉분포)에서만 제 역할을 하는 여러 도구 중 하나일 뿐이다.
- 한국갤럽조사연구소 (2023). 한국인의 혈액형, 별자리, 사주, 신년운세 등에 대한 조사 (전국 만 19세 이상 1,501명).
- 우리국민 본인 혈액형…A형 34%, B형 26%, AB형 11%, O형 28% — 폴리스TV